실천신학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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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와 방법 

 

1. 서설
실천신학의 시대인 오늘날은 선교학과 교회학 뿐아니라 설교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최근에는 강해설교의 붐이 조성되고 있다. 설교의 형태는 본문설교, 주제설교, 본문 주제설교, 강해설교 등이 있는데 이중 강해설교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강해설교는 신학의 입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해설교의 방법중 구속사적 설교의 방법론을 제창하고자 한다.
2. 최근의 구속사적 설교의 관심
구속사적 설교 방법은 아직은 한국 교회에 널리 알려진 개념은 아니다. 이것에 관한 연구로는 시드니 글레다누스:[오직성경], Edmund P. Clowney:[설교와 성경신학], 더 그라아프:[언약사], 고재수:[구속사적 설교의 실제], 박종칠:[구속사적 성경해석], 김영철:[여호와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등이 있다. 이제 이런 면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고 풍성한 강단을 추구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
3. 구속사적 설교의 발원
일반적으로 '구속사'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계획했으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계시하시고 섭리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신학적인 입장이다.
구속사적 설교를 처음 말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말 화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당시까지 예증적 설교를 지켜오던 자들의 반발도 있었다. 이런 면에서 한국 교회도 이 설교 방법이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구속사적 설교를 낳게한 배경은 a> Karl Barth의 변증법적 신학에 대한 반응 때문이었다. 여기에 대표자인 스킬더 박사는 계시사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한 성경해석을 바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b> 1930년대를 전후해서 화란 교회에서 일어난 이른바 주관주의(Subjectivism)에 대한 반작용에서 시작되었다.
4. 예증적 설교에 대한 반성과 문제점
우리가 성경을 잘못 사용하면 윤리적 모범을 보여주는 책으로 전락시키기 쉬운데 이것이 예증설교의 문제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부터 중세를 거쳐 개혁주의자들까지도 답습해 왔다.
예증설교 지지자들은 지적하기를 구속사적 설교는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강의가 될뿐이며 무미건조한 설교라고 한다. 또 예수님이 구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했으니 예증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증적 설교는 순전히 인간 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전기적 인물을 고찰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 옳은가하는 것이 문제이다. T. Hoekstra의 지적대로 강단에서 전파될 자는 베드로, 모세, 아브라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설교가 도덕적 교훈으로 전락해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설교를 위해서는 본문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뿐만아니라 예증설교는 구속역사를 세속사로 전락시켜 버리게 된다.
5. 구속사적 설교의 윈리
1) 하나님 중심사상
구속사적 설교를 하는 사람은 항상 역사적 본문은 하나님 편에서의 접근을 우선으로 시작한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므로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의 성공적 삶을 말하기 보다 하나님께서 그 인물을 통해 무엇을 하셨는가에 촛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2) 역사적 점진성의 원리
구속사적 설교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운동을 구체적인 역사 가운데 진행시켰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다시말하면 구속사는 그 본질적 요소로서 역사성을 가진다. Barth를 중심한 초역사주의는 기독교를 공중누각 같은 초월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구속사는 역사 속에서 여러 사건을 동반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것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통일성과 점진성을 전제하고 학문적 발전을 시켜나가는 것을 성경신학이라고 한다면 구속사적 설교는 바로 성경신학적 설교 방법론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구속사적 설교란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역사의 축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 특성을 가질 뿐아니라 구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설교의 방법은 어떤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든지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선포한다는 것은 은혜만 전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한 분명한 선포와 함께 은혜가 선포되어야 한다.
6. 구속사적 설교의 방법 문제
1) 역사적 본문의 범위 문제
구속사적 설교는 역사적 본문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본문들 가운데서 사람들의 전기를 소개하는 설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도리어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2) 역사적 설교의 본문 선택
설교 본문을 선택할 때는 적어도 하나의 완전한 사건을 다루어야 한다. 다시말하면 역사적 본문이 하나의 잘 짜여진 단위여야 한다. 이 본문을 여러 개의 다른 본문과 혼합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 말은 병행구나 신약의 성취 내용조차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3) 역사적 해석
예증설교는 역사적 본문을 오늘날과의 시간적 Gap을 무시한 채 오늘의 삶에 바로 적용함으로서 실존적 설교, 영해설교, 도덕적 설교를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역사적 해석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4) 유기적 해석
설교자는 본문해석에 있어서 문맥을 중시하여야 한다. 어떤 본문이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의 파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큰 흐름 속에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아 통일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5) 본문적 주제설교
구속사적 설교는 그 형식에 있어서 본문적 주제설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강해설교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강해설교가 구속사적 설교방법을 쓰지 않으므로 강해설교라 해도 만일 구속의 통일성과 계시의 점진성을 알지 못한다면 바른 설교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사실상 설교는 어떤 형식이 좌우한다기보다는 설교자가 그 성경 본문에 계시된 구속사적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고 있는가에 촛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6) 상황적 설교
구속사적 설교에 있어 그 진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구속사적 설교자도 본문해석에 있어 설교자 자신과 그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연결해야 한다. 그 원리는 이렇다. a> 삼위 하나님은 언제나 상황적이다 - 영원토록 살아계신 삼위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b> 하나님의 말씀은 상황적이다 -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이다. c>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는 설교 자체가 구속활동의 한 연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설교는 적용적 해석이므로 상황성을 지닌다. 그러나 설교자가 역사적 간격을 무시한 채 적용에만 끝없이 노력하면 예증설교와 같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7. 구속사적 설교와 타설교와의 비교
구속사적 설교와 종래의 다른 설교를 비교하기 전에 먼저 구속사적 설교의 착안 사항을 알아보자.
① 성경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자기계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계시하셨는가를 먼저 찾고 또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② 중보자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발견하는 일이다. 인간은 죄로 어두워졌고 중보자를 통한 은혜의 계시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것이 신,구약의 계시의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에스더서를 설교하건 삭개오 이야기를 보건, 또 베다니 마리아 사건을 보건 간에 그 속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계시는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 속에 나타났다. 예를 들어 요셉이나 다윗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보다 이 인물을 통해서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적 뜻이 무엇인지를 문제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국에 있어서 설교 현실과 구속사적 설교의 접근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자.
1) 첫번째 성결교 목사로서 제목설교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김응조 목사의 설교를 생각해보자.
그는 사 35:1-7에서 "사막의 생수"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의 내용은 매우 복음적이나 설교 전편에 걸쳐 그리스도를 말하는 곳은 단 두 줄 뿐이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계시를 바로 증거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가슴뛰는 구속의 계시에서 고작 단순한 교훈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도덕적 설교에 지나지 않는다.
2) 강해설교 운동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장두만 박사의 "성탄에 대한 세 가지 태도"(마 2:1-12)를 살펴 보자.
중심내용 : 성탄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① 어떤 사람은 적대적이다. 왕권이 불안하던 헤롯은 성탄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오늘날도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길까봐 적대적인 사람이 있다.
② 어떤 사람은 무관심하다. 종교 지도자들은 관심이 없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그리스도 없는 행사위주의 성탄절을 보낸다.
③ 어떤 사람은 경배한다(7-12). 동방박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도 참된 경배자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의미있는 예배를 드린다.
* 여기서 첨부하여 우리는 동방박사를 베들레헴으로 불러들인 하나님의 웅장함을 드러내고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할 것이다.
3) 다음으로 창 22:10-19 본문을 두고 이병돈 목사의 "아브라함의 신앙", 임사순 목사의 "온전한 제물이 되자", 최지덕 목사의 "제물은 어디에 있나이까" 등의 설교가 있는데 우리는 이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우선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제사는 하나님이 만드신 제사의 모방이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아브라함이 대답했던대로 하나님은 언제나 스스로 제물을 준비시키신다. 그는 약속의 아들 즉 언약의 말씀 자체를 희생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본문 속에서 언제나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8. 평가와 결론
설교는 단순히 교회 성장을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재래식 설교보다는 구속사적 설교 방법을 터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성경 전체의 구속사의 흐름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성경을 가지고 부분적으로는 예증적 설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며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사실을 힘있게 증거하는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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