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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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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령 론 연 구

                                     

제1장 성령의 정체성

◉ 들어가는 글

현대 한국교회의 성령론에 대한 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교리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 (장로)교회 조직 내에서는 일견(一見) 어떤 혼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교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성령을 자신들의 필요나 목적을 해결해주는 부적이나 신비한 능력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신비하고 기적적인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회자(膾炙)되는 현장을 찾아서 종교적인 갈증을 풀어보려는 노력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성령에 대한 성경적 바른 이해를 교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개인의 경험 위주로 전달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 한국 교회는 성령의 사역과 관련해서 이미 지나치게 신비주의, 은사주의로 치우쳐 위험 수위에 도달한 사례들이 많다. 한국 교회의 성령 이해는 일관성이 없고,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신학논쟁도 끊일 날이 없다. 과연 성령의 본질과 그 사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2. “성령은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 살리는 영으로서 그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전통적인 성령에 대한 이해는 너무 개인의 중생과 은사 영역에 제한되어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인간을 중재. “창조의 영” “보존의 영” “화해의 영”으로 이해된다.

3. 성령은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교회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이다. “교회를 인도하며,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영” 따라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는 교회 사역의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회는 성서의 말씀과 더불어 끊임없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4. 그러나 지금까지 성령운동의 부정적 현상(극단적 운동/ 몬타누스, 재침례교운동 등) 때문에 성령론이 외면된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성령론은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너무 교리에 얽매여서 보면 안 된다. 성령론의 강조는 어쩌면 교회조직과 체계화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18세기 대 각성운동, 20세기 오순절 운동 등은 교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부흥운동이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만을 강조한 운동보다는 총체적인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5. 신학의 패러다임은 신론→그리스도론→성령론의 순으로 전개되어간다. K. Barth는 신학을 다시 쓴다면 그리스도 중심이 아니라 성령 중심으로 쓰겠다고 했다.

6. 성령은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수평적인 사고를 하게 하므로, 열려진 마음으로 세계를 향하게 하고 또 자아 중심 세계 속에서 함께 서로를 향하여 공동체적 사고를 하게하고... 사랑과 연합과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한다.”(황승룡).

I. 성령과 구원사(The Spirit in Salvation History)

성령은 “완전한 인격이며 완전한 하나님이다.... 사역에 있어서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하다.” “점진적 계시”라는 측면에서 성령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성령과 구약시대(The Holy Spirit and the Old Testament Era)

1)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 루아흐(ruach)

(1) “생명을 창조하고 지탱해 주는 신적인 힘”

(2)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힘”

(3) “이해 불가능한 분(the incomprehensible one)으로서의 하나님”(사 40:13)

(4) “하나님의 자기지식”(God's knowledge of himself)(고전 2:10-12)

(5) “편재(omnipresence)하시는 하나님”(시 139:7)

(6) “도덕적 거룩함(moral holiness)을 지닌 하나님의 영”

(7) 하나님의 영은 삼위일체 교리를 탄생시킨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 속에서 첫 번째 단계

2)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의 기능들

(1) 창조자 성령(시 18:15)

(2) 생명을 지탱시키는 존재(시 104:29-30; 사 32:15)

(3) 특별한 방식으로 활동: 특별한 임무/ 특정한 개인/ 초자연적 권능/ 일시적

(4) 창의성; 초자연적 능력 수여; 탈혼 상태 체험

(5) 하나님의 임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제공

(6) 왕정시대: 제도화된 이해로서, 기름 붓고 안수하는 행위는 성령의 임함을 상징

(7) 정의 실현(사 11:1-5)

2. 성령과 그리스도: 예수는 구약 성령론의 성취(fulfillment)

1) 예수: 성령을 지닌 자(the bearer of the Spirit)

(1) 성령의 특별한 기름부음(anointed)을 받은 예수: 사역의 시작(눅 4:18-19): 목표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가난한 자→복음, 포로된 자→자유, 눈먼 자→다시 봄, 눌린 자→자유)

(2) 예수는 성령의 중재자(mediator)

2) 장차 오실 성령에 관한 예수의 약속

(1) 다른 보혜사(counsellor), 조력자(helper)

(2) 조력자의 과제: 예수와 그의 백성을 중재(요 14:16-19); 예수의 약속을 상기(마 28:20); 선생(마 28:25-27); 진리로 인도(요 16:12-15); 세상을 향한 예수 증거(요 15:26-27; 16:7-11)

(3) 성령의 권능: 제자들에게 맡겨진 과제 완수

3) 오순절 사건(Pentecost): 예수의 약속 성취

(1) 요한복음 20장 22절: 부활절; 예수 사역의 정점에 해당

(2) 사도행전 2장: 오순절; 교회 선교시대의 시작과 확장

(3) 요한과 누가의 기록은 조화될 수 있는가? 저자는 H. B. Swete의 견해를 소개하며, 부활절 사건은 오순절 사건의 상징적으로 선치된 사건(proleptic event)으로 해석한다(539).

3. 성령과 그리스도의 공동체

1) 오순절 사건의 의미

(1) 거대한 예언 전승의 성취(행 2:16-22; cf. 욜 2:28-32)

(2) 반복될 수 없는 사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정표로 일회성 사건: 교회의 탄생; 성육신이 1회이듯, 성령강림도 1회

(3) 성취시대의 개막(벧전 1:10-12)

(4) 모든 신자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다(고전 12:13).

(5) “기다림은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걷는 것, 즉 성령의 동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2) 성령과 부활하신 주님

(1) 유사성: 성령 강림=주님 강림(요 14:15-18), 그리스도 안에서=성령 안에서(롬 8:1; 빌 2:1)

(2) 차이성: 성령의 역할은 예수 사역의 계승 및 도구로써, 그 목적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고(요 16:14) 예수를 증거 한다.(요 15:26).

(3) 성령의 새로운 정체성: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리인; 역사의 종말과 완성을 가져올 하나님의 동력.

4. 성령을 상징하는 표현과 칭호들

1) 바람, 생기(창 2:7; 8:1; 욥 33:4; 겔 37:9; 요 3:8; 행 2:1-2)→생명, 활동, 역사, 힘. 창 8:1에서 홍수 후 죽은 땅을 살리기 위해 바람으로 물을 제거한 것은 성령의 살리는 역할을 상징. 폭풍/ 미풍/ 열풍/ 허풍, 성령의 바람은 어떤 바람인가? 본문에서 강조하고픈 바람의 성격은?

2) 비둘기(눅 3:22; 요 1:32)→온유, 평화, 순결, 천적(天的) 본성과 기원

3) 기름(눅 4:18; 행 10:38; 요일 2:20, 27; 고후 1:21)→권능, 권위, 임재, 예배, 거룩한 구별

4) 불(행 2:3-4; 마 3:11-12)→정화, 능력, 심판(요 16:8) 특히 이 측면은 초대교회의 원동력이 되게 했다. 제자들의 변화도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의 사역 결과다.

5) 생수(요 3:5; 7:38-39)→충만, 생명; 시원한 역사...

6) 인(엡 1:13; 4:30; 고후 1:22)→구원의 보증, 소유 표시

7) 호흡(요 20:22; 딤후 3:16)→생명의 능력, 하나님의 입김

8) 비(호 6:3; 시 72:6)→하나님의 임재

9) 성령의 칭호(Wayne House): 한 영(엡 4:4)/ 일곱 영(계 1:4; 3:1)/ 영원한 영(히 9:14)/ 영광의 영(벧전 4:14)/ 거룩한 영(롬 1:4; 요일 2:20)/ 지혜의 영(사 11:2)/ 능력의 영(사 11:2)/ 야훼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사 11:2)/ 진리의 영(요 14:17)/ 은혜의 영(히 10:29)

II. 삼위일체의 삶 속에서 성령(The Spirit in the Trinitarian Life)

1.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 속에서 성령론의 토대=세상과 무관하게

1) 성령의 기본적 정체성

(1) 성자의 영원한 출생(generation)

(2) 성령의 영원한 발출(procession)

(3) 기본 공리(basic postulate):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상호적(reciprocal) 사랑이다.”

2)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

(1) Arius/ Macedonius: “성령은 성자의 첫 번째 피조물이었다.”

(2)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년): 성령의 인격성 교리 채택.

(3)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완전한 하나님이다. 이런 이유로 ‘사랑’으로서의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임과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의 본성을 규정하는 존재이다(요 4:24; 요일 4:8).”

(4) 성령의 인격성: 하나님의 인격성에서 유래.

2. 성령과 삼위일체(the Economic Trinity)=세상 속에서

1) 기본적 이해

(1) 성령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능력/ 사랑.

(2) 성령은 종말론적 공동체를 탄생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완성자

2)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성령의 정체성의 여러 측면들

(1) 모든 생명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편만한 능력

(2) 구속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중재하는 초월적이고 돌입하는 동력

(3)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역동적 능력

3) 종말론적 창조자 영으로서 성령의 정체성

(1) 종말론적 완성자: 삼위일체 속에서

(2) 창조적 완성자: 새로운 창조와 구원

(3) “성부는 성자로 말미암아(by) 성령을 통하여(through) 창조하신다”.

3. 삼위일체로서 성령의 특성

1) 하나님의 속성을 공유

“생명의 성령”(롬 8:2), “진리의 성령”(요 16:13), “성령의 사랑”(롬 15:30), “영원하신 성령”(히 9:14), 편재하신 성령(시 139:7).

2) 하나님과 함께 사역

창조사역(창 1:2), 죄를 깨닫게 한다(요 16:8), 중생을 가능케 한다(요 3:5), 새롭게 한다(딛 3:5), 죽을 몸을 살리신다(롬 8:11), 귀신을 쫓아낸다(마 12:28).

3) 하나님으로 호칭되거나 간주

성령을 속인 것은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행 5:3,4),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곳(고전 3:16), 하나의 성령, 하나의 주, 하나의 하나님(고전 12:4-6)(고전 12:4-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세례의식에서 동급으로 언급(마 28:19), 축도에서 동급(고후 13:13)

4) 인격적인 영

(1) 희랍어 ekeinos 남성대명사로 지칭(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2) 희랍어 paraclete, 위안자, 옹호자, 상담자, 조력자의 뜻으로 지칭. 이 용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사용된 것(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a Advocate)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3) 성령은 알고, 말하고(행 2:4), 알리고(요 16:13, 14), 확신시키고, 가르치고(눅 12:12), 인도하고(행 8:29), 간구하고(롬 8:26), 은사를 주고(고전 12:11), 근심하고(엡 4:30), 돕고, 책망하고(요 16:8), 말씀을 전하게 한다(행 4:31).

(4) 불의한 자를 회심케 하고, 부르시고, 성장하게 한다.

Ⅲ. 회심과 성령세례

1. 오늘날의 오순절파(역사적 개요)

1)오순절파의 신학적 뿌리: 존 웨슬리의 “두 번째 축복”(the second blessing)신학

(1) 첫 번째 물결: “교리적 오순절운동”(doctrinal Pentecostalism). 오순절 체험을 제도화. 방언은 그 표적(sign)으로서 교리적 표준.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의 부흥(1906-1909년)이 핵심, 찰스 폭스 파햄(Charles Fox Parham)의 방언사건이 뿌리, 오순절파 형성계기

(2)두 번째 물결: “체험적 오순절운동”(experiential Pentecostalism).“은사운동”

(the charismatic movement). 방언은 비필수적. 성공회의 데니스 베넷(Dennis Bennett) 신부(1959년), 가톨릭과 복음주의 교회에 영향

(3) 세 번째 물결: 빈야드 운동(the Vineyard movement),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와 존 윔버(John Wimber). 성령의 외적 현현 중시.

2. 오순절파의 성령세례 및 방언관

1) 회심과 성령세례의 관계: 회심 이후의 성령체험

2) 개개인이 겪는 오순절 사건

3) 방언은 성령임재의 표적

3. 오순절파의 입장에 대한 평가

1) 오순절파의 성령론이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이유

(1) 오순절 사건은 계속 경험할 수 있는 개인적인 사건이 아닌,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사건이다.

(2) 사도행전은 성령세례나 방언과 관련된 하나님의 활동을 단일한 패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마리아인들과 고넬료의 회심의 시기와 성령세례의 시기의 차이

(3)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은 역사적인 이야기로, 이와 동일하게 우리가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4) 성령론은 사도행전과 누가복음보다 바울의 명시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바울은 성령의 임재를 확증해 주는 것으로 방언보다는 생활양식을 들었다.

4. 성령세례, 회심, 성령충만(Spirit filling)

1) 성령세례는 회심 때에 일어나는 기적의 차원을 표현한 것으로, 단 한번으로 완성되는 변경할 수 없는 완료된 현실이다.

2) 끊임없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3) 회심 후 성령과의 만남을 보편화하거나 규범의 차원으로 승격시켜서는 안 된다.

4) 두 번째 축복을 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성령 충만 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Ⅳ. 한국 교회의 성령세례 논쟁과 성서적 이해

1.논쟁의 발단과 전개

1) 안영복 교수의 입장: 성령내주(중생)≠성령세례=성령충만

-오순절 성령강림은 신약교회 전체에 내린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개교회(120명)에 임한 것이다.

-오순절 사건은 단회의 사건이 아니라 재림까지 계속되는 사건이다. 성령의 은사를 특수은사와 일반은사로 나누는 것은 부당하며, 지금도 모두 주어진다.

-오순절 이전이나 이후에도 성령세례와 중생은 구별된 것이다. “언제나 이미 성령을 모시고 있는 신자들에게 더 충만케 하는 영으로 임하실 수 있는 것이다.” “중생의 공작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으로 나타나지만(요 3:5-8), 성령세례는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중생한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나타난다(행 2:33, 10:45, cf.욜 2:28)”(1992. 8. 23) 중생은 성령세례가 아니다. 성령세례는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능력이고 충만이다.

2) 최갑종 교수의 입장: 성령내주(중생)=성령세례=성령충만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 구원 역사적 사건이며 동시에 또한 [계속적] 구원적용의 사건”(1992. 9. 20)

-성령세례는 제2의 은사가 아니라 복음을 통해 구원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이 말은 “성령주심,” “성령 보내심,” “성령으로 인치심,” “성령충만”과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령 없는 중생, 성령세례 없는 중생은 불가능하다.”(1992, 7. 27)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도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다.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가 다시 성령으로 충만해졌다(행4:31). 스데반(행:6:3, 5... 행7:55). 성령의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특성으로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2. 성서의 용례 분석: 성령과 세례라는 말이 함께 사용된 곳은 모두 일곱 군데

1) 마 3:11; 막 1:8; 눅 3:16; 요 1:33은 병행구절

[개역]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 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2) 행 1:5은 눅 3:16과 관련된 것으로써 오순절 사건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점진적인 구속 사건으로 해석.

[개역]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행 11:16은 행 1:5절을 연상케 한다.

[개역]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 11:16)

-고전 12:13은 개인의 구원 체험을 의미하는 중생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반드시 오순절 사건과 같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를 받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개역]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3)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사건

-예루살렘 (오순절) 성령 강림(행 2:1-4): 구속사적 관점에서 일어난 최초의 성령강림사건/ 가시적이고 집단적/ 상징성 강함/ 초대교회의 시작을 알림. 제2의 축복이나 은사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한다. 방언으로 나타난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 2:4)

4) 사마리아 성령강림(행 8:14-17):

8:13, 시몬-믿고 세례-전심으로 추종

8:15, 베드로, 요한-성령 받기를 기도-성령 받음(능력을 행함)

8:18, 시몬-돈으로 능력을 사려함

▷회심≺물세례≺성령강림 →예외적 사건

5) 가이사라에 주둔한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성령강림(행 10:44-48; 11:1-18)

10:44,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6,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높임

▷회심=성령강림≺물세례 →전형적 패턴

6) 소아시아 에베소의 성령감림(행 19:1-7)

19:2, 믿음의 대상? -요한의 세례-회개의 세례

19:5, 믿음의 대상? -예수의 세례(“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안수하여 성령 임함-예언, 방언

7) 결론: 사도행전의 성령강림 사건은 복음의 전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루살렘-사마리아-가이사라-소아시아로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 따라 성령강림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장: 성령 준비장

2-8장: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12제자 중심)

9-12장: 이방선교 준비장

13-28장: 땅 끝까지 선교(바울 중심)

따라서 성경에서는 성령으로 세례 받는 사건은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오순절 사건과 관련된 것이고(사도행전), 다른 하나는 중생의 성령내주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고린도전서). 이는 마치 사도행전 형 방언과 고린도 형 방언으로 구분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다. 사도행전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오순절의 성령강림사건이었고, 초자연적인 능력 행함이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초자연적 은사보다 인격적인 변화를 더 중시한다. 이 때 성령세례는 성령내주와 동일시될 수 있다.

▷제2은사, 성령세례를 너무 강조하면 인간의 노력과 의지가 부각된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받지 못하면 지옥갈 수밖에 없는가?

반면에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는 칼빈 주의자들은 제2의 은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활동을 약화시키는 약점이 있다.

▷바람직한 해석: 성령내주 = 성령세례 ≦ 성령충만

원어적 의미에서는 세례나 충만이나 다 완전히 잠긴다는 뜻이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은 외형적인 능력을, 고린도전서의 성령 충만은 내적 열매를 맺는 것과 관련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성령세례(충만)는 곧 신자의 조건(고전 12:13)

3. 방언과 성령강림

당시 초대교인들은 방언 현상을 성령 강림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점진적 계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이해는 부분적인 것이다. 성령의 내주 현상과 성령의 충만, 역사하심은 구분되어야 한다. 다음의 성경구절은 구원 후 성령강림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성령 없이 구원받았다가 나중에 성령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4-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행 19:1-7)

이런 현상은 초대 교회의 특별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오늘날에도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성령과 은사

1. 어원과 특징

1) 은사(charisma)는 은혜(charis)와 어원이 같다.

2) 성령은 한 분이나 성령이 주는 은사는 다양하다(고전 12:4).

3)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는 은사다. 교회를 위해 사용되지 않으면 변질되고 부패한다.

4)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체로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5) 초자연적 은사는 습득된 기술이 아니다.

2. David Hocking의 분류

1) 말씀 사역의 은사

2) 봉사의 은사

3) 초자연적 은사

3. 은사의 세 원리(황승룡)

1) 카리스마의 제1원리: 은사를 발견하는 것

2) 카리스마의 제2원리: 서로를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는 것

3) 카리스마의 제3원리: 주님께 순종하는 것

4. 목회서신에 나타난 교회지도자의 자격은 예언이나 방언, 이적 행하는 능력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칭찬을 받는 삶의 태도를 요구한다(딤전 3:1-13; 딛 1:5-9). 바울의 마지막 서신서인 디모데후서에서 말하는 성경의 영감에 대한 교훈은 성도들의 삶을 주관적인 능력 행함이나 사사로운 예언/계시보다 객관적인 말씀에 의존하라는 당부다.

Ⅵ.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한 신학적 성찰

1. 성령의 은사는 신자들이 교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 의의가 있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이 이루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갈 5:16)은 거룩한 삶을 위해 성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신자는 성령에 충만해야 한다(엡 5:18). 왜냐하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하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3. 성령 충만한 삶은 아름다운 교제(엡 5:19), 감사의 마음(엡 5:20), 서로 복종하는 마음(엡 5:21)로 나타난다.

4. 그러므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신자들이 삶에서 나타나야 할 덕목이다(갈 5:22-23). 이 덕목은 하나님과 나와 이웃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이 열매는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이나 기적 등을 요구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회지도자의 자격은 초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삶의 질이요 태도다.(딤전 3:1-13; 딛 1:5-9).

1) 사랑: “희생적 사랑”인 아가페. 성령의 첫 열매. 이것이 없이는 다른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2) 희락: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기쁨. 하박국 기자의 고백처럼.

3) 화평: 하나님과 성도의 화평, 성도와 성도의 화평.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결코 세상이 주는 화평과 다르다.

4) 오래 참음: 모든 성도들의 미덕. 시험을 이기는 힘

5) 자비: 불쌍히 여기는 마음.

6) 양선: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

7) 충성: 진실과 같은 말로써 변치 않는 것.

8) 온유: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9) 절제: 금욕주의와는 무관. 신독(愼獨).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출발하여 절제로 끝날 때 완성.

Ⅶ. 성령과 방언

1. 방언은 성령의 선물(고전 12:10, 행 2:4, 19:6); 간청한다고 무조건 받는 것은 아니다.

2. 방언의 유형: 복음전도를 위한 외국어(행 2:4-11: 오순절형 방언)와 하나님과 대화를 위한 영의 기도(고전 14:14: 고린도형 방언). 전자는 통역불필요. 후자는 혼란과 몰이해의 위험. 영적 언어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통역필요.

20세기 방언은 계시를 말하는 예언성 방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볼 때, 오늘날도 오순절형 방언과 고린도형 방언이 다 일어날 수도 있다. 전자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방언이고, 후자는 믿는 자들 자신을 위한 방언이다.

3.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나타난 방언의 부정적 현상과 영향을 지적하고 있다. 방언을 통해서 자신의 덕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고전 14:4). 따라서 교회에 유익하지 않은 방언은 금지시켰다. 통역하기를 힘써야 한다(고전 14:13)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다(고전 14:28). 때문에 방언보다 남을 가르치는 것이 더 좋고(고전 14:19), 그 모든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좋다(고전 13:13).

4. 현대교회에서 방언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위해 필요할 수 있다. 방언의 역사가 오순절에 그치고 오늘날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반대로 방언이 구원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5. 방언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간구하는 자에게 방언을 주신다. 사람의 성격과 기질이 방언을 할 수 있고 없고를 결정하지 않는다. 방언은 온전히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원하는 자는 방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방언을 받는 것은 아니다.

6. 하지만 방언의 현상 가운데는 성서적이지 못한 것도 있다. 어떤 경우는 악령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학습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교회 안에서 금지되거나 매우 조심해야 한다. 분별이 필요하다.

결론: 신앙에의 적용

1. 성령은 신자 안에 내주하신다. 제2의 성령세례는 없다. 성령 충만이 있을 뿐이다.

2. 성령은 독립된 인격인 동시에 하나의 힘이다. 신자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인격적 능력이다.

3.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사랑의 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사랑이 결여된 은사는 성령의 은사가 아니다.

4. 성령의 은사는 마침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한다.

5. 바울의 권면: 성령충만 계속(엡 5:18); 성령 따라 생활(갈 5:16); 성령 인도(갈 5:25); 성령 소멸 금지(살전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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